[투데이엔]지하철 경복궁역에서 부암동으로 향하는 버스를 탄다. 부암동주민센터 혹은 자하문고개에서 하차하면 부암동이 시작되는 '클럽에스프레소' 삼거리가 나온다. 휴일을 맞아 부암동을 찾은 연인, 친구들이 무리 지어 서있고 일본인 관광객도 눈에 띈다. 이들의 세련된 옷차림이 무색할 만큼, 손님을 맞는 부암동은 수수하고 조용한 동네다. 누군가 부암동을 가리켜 도심 속의 전원, 도심 속의 오지라더니 그 말이 꼭 들어 맞는다.



부암동은 최근까지 그린벨트 지역으로 묶여있었다. 개발이 제한된 이곳에 부암동의 탁 트인 전망과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자리 잡았고 환기미술관, 클럽에스프레소 같은 미술관과 카페가 들어섰다. 그러던 것이 2005년 백석동천이 국가지정 사적으로 지정되며 세상에 알려지고, 커피프린스 1호점 촬영지 산모퉁이 카페가 오픈하며 부암동은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도보나들이 코스로 각광 받게 된다.



부암동 나들이엔 운동화가 적합하다. 마을의 입구부터 오르막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산모퉁이 카페가 보이고, 주택가를 지나 더 들어가면 울창한 숲이 나타난다. 이곳에 부암동의 자연경관 중에서도 백미로 꼽히는 백석동천이 있다.



백사실 계곡이라는 이름으로 더 알려진 백석동천, 풀이하자면 '백악의 아름다운 산천으로 둘러싸인 경치좋은 곳'이라는 뜻이다. 서울 유일의 자연폭포인 이곳은 한여름이면 더위를 식히기 위해 찾아 오는 방문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백석동천은 과거 이항복의 별장이 있었다고 전해지며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생물다양성이 풍부해 생태경관보존지역으로 지정되었다. 1급수의 깨끗한 물에 도롱뇽, 가재, 산개구리 등이 서식하며 느티나무, 산벚나무 등이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백석동천에서 도심 속 청정한 자연을 만끽했다면 바깥에는 또 다른 부암동의 묘미가 기다리고 있다. 골목마다 자리잡은 낮은 건물과 정원, 서울이 내려다보이는 전망이 바로 그것이다. 오랫동안 그린벨트와 군사보호구역에 묶여 계발이 제한되었던 부암동, 이제는 그 한적하고 예스러운 정취가 방문객들의 걸음을 멈춰 세운다.



이런 부암동에도 변화의 물결이 일고 있다. 2004년 부암동의 그린벨트가 해제된 데 이어 지난 3월부터는 창의문길, 자하문길변에 다세대주택 및 전시장 등이 들어설 수 있게 되었다. 또 지역주민의 문화생활을 위한 지상 2층짜리 문화시설, 소공원 등이 조성될 계획이다. 단독주택이 밀집한 부암동이 어떻게 변화할지 관심이 주목되고 있다.



클럽에스프레소 삼거리에서 길을 건너면 2010년 윤동주 시인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조성된 시인의 언덕이 있다. 계단을 오를 때마다 수풀 너머 펼쳐진 서울의 전망이 시야를 가득 채우고 언덕 중앙에는 서시가 새겨진 표석, 시의 소재가 되었다던 윤동주 소나무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언덕 아래에는 서지정이라는 정자와 호랑이 조각, 철로 이루어진 독특한 조형물이 자리잡고 있다. 지나가던 행인들이 직접 돌로 얹을 수 있는 이 조형물은 성황당에 돌을 쌓듯 시민들이 돌을 쌓으며 소망과 염원을 담을 수 있도록 제작됐다.



부암동을 대표하는 맛집이라면 자하손만두가 빠지지 않는다. 1993년 인왕산이 개방되며 등산객에게 만두를 빚어 팔던 것이 지금은 가정집 전체를 만두집으로 운영하고 있다. 손님이 끊이지 않는 이곳에서 담백한 편수와 조랭이콩국을 주문했다.



오래된 정취와 풍경을 간직한 마을, 서울의 번잡함에 지친 이들에게 부암동은 분명 특별한 곳이다. 하지만 세간의 관심이 마냥 달갑지 않은 이들도 있다. 40년 가까이 자리를 지킨 명물 떡집, 동양방앗간의 차옥순(71) 할머니는 “전에는 조용하고 시골 같은 맛이 있었다. 지금은 생기는 것마다 카페고 주말이면 차들이 많아 예전의 부암동이 그립다”고 말했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부암동의 상업화를 우려하고 있다. TV에 소개된 후 심각해진 사생활 침해와 자연 훼손을 지적하는 이들도 많다. 부암동이 고요하고 정갈한 자기만의 색을 지키고 더 많은 사람들이 부암동을 즐길 수 있도록, 모두의 주의와 배려가 필요한 시점이다.